오늘(1/31) 월요일 아침 말씀묵상 큐티를 합니다.
예수님이 빌립을 부를 때 그는 예수님을 알아보고(43절)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구약의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를 내가 만났는데, 그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45절) 소개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처음에는 선입관을 갖고 안 가겠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서 선입관을 갖는 것은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출생지는 베들레헴이지만 성장한 곳은 나사렛이기때문에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나사렛은 별 볼일 없는 시골 촌 동네인데 거기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빌립은 아무소리 하지 말고 ‘와서 보라’고 합니다(46절).
주님이 나다나엘을 보자 “너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함이 없다”(47절)고 하니까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하자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고 주님이 말씀합니다(48절)
무화과나무 아래서 나다나엘이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주님은 보셨을까 생각해 볼 때, 성전에서 진심으로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던 시므온과 안나처럼(눅2:25~38) 나다나엘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시고 구원이 되시는 메시아(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를 한 것을 주님이 아셨다는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 하던 나다나엘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임금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이 엄청난 신앙고백을 합니다(49절). 보고 아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만이 가능합니다(요1:13). 그래서 하나님께로 난 자는 예수님을 보고 알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의 그 마음 중심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이 나다나엘처럼 빌립처럼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의 신앙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50절)고 말씀합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본다”는 것 입니다(51절).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도망 가다가 들판에서 잠을 자게 되었을 때 꿈에 하늘에 연결된 사닥다리가 있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고 깨어서 그 곳을 벧엘이라 이름 합니다(창28:11~19).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 그 역할을 지금 예수님이 하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늘(하나님)과 땅(존재-인간)이 인간의 범죄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하늘)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사닥다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그 일을 감당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보고서 아는 것이 더 큰 일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아는 자는 더 이상 자기만을 위한, 이 땅의 것만 위해서 삶을 구축하지 않습니다. 더 큰 일을 보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고 알고 믿는 자는 복있는 자입니다.
아무나 보고 알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이 은혜와 축복을 보고 알고 믿도록 해 주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하늘의 영원한 나라의 사닥다리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타고 영원한 나라로 올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묶여서 주님과 연합되어서 주님만을 더 갈망하고 사모함으로 하늘이 열리면서 말씀과 기도로 영적 깊은 은혜에 푹 잠겨서 풍성하게 누리며 감격하는 날이 날마다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