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3/9) 수요일 아침 말씀묵상 큐티를 합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영생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시니 사람들이 어렵다고 합니다(60절). 주님의 말씀을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마음에 걸림이 되고 있습니다(61절).
그래서 주님이 그들에게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올라가면 믿을 수 있겠느냐고 하시면서(62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3절)고 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다’는 것은 구원받고 영생 안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으로 되는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의 노력과 활동은 구원얻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되살려서 구원받게 하여 영생 안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른 말, ‘이른 말씀’은 헬라어로 [흐레마/레마]입니다. [흐레마/레마]는 죽은 자를 살리는 영과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 그 [흐레마/레마] 죽은 자를 살리는 성령과 생명의 말씀이 그 마음 속에 없었기 때문에 결국 주님을 떠나 갑니다.
영은 영이고 육은 육입니다. 영적인 흉내를 아무리 많이 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육일 뿐입니다. 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가룟 유다와 예수님을 따르다가 떠나간 많은 제자들이 그와 같은 자들인 것입니다(66절). 하지만 시몬 베드로의 마음 속에는 주님이 이른 말, 그 하신 말씀, 즉 죽은 자를 살리는 성령과 영생의 말씀인 [흐레마/레마]가 있었기에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기에 떠나갈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68절).
베드로가 주님을 떠나갈 수 없었던 것도 어떤 인간적인 노력과 활동과 선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드로를 예수님에게로 오게 하여 그 [흐레마/레마]가 그의 속에 있게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65절).
사람을 거듭나게 만들고, 새 생명 안에 있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과 그 말씀인 [흐레마/레마]의 사역인 것입니다.
육적인 세계와 판단과 생각으로 어떤 것을 해도 생명이 되살아나서 회복되어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것은 영에 아무런 역할을 못합니다.
예를 들어 식사를 아무리 고급으로 먹는다고 해도 영적인 부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만들어 주신 그 기적의 떡을 먹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육적으로 먹은 사람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너희 조상은 40년 동안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즉 육적인 것으로만 계속 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생명의 떡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는 것은 성령님이 내 안에 [흐레마/레마] 말씀, 즉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영으로 들어오셔서 내 안에서 영적 사건이 일어남으로 내 영이 살아서 성령과 교류를 갖고 관계를 맺고 연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무슨 일을 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그 이전에 생명이시고 영이신 하나님과 그 말씀 [흐레마/레마]이 내 속에 있는 영과의 신비로운 영적 관계를 맺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어떤 인간적인 노력과 활동과 착한 행동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영적인 것을 흉내낸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 내 영이 ‘주님이 이른 말’[흐레마/레마]로 되살아나서 주님과 관계를 갖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이른 말, 그 말씀[흐레마/레마]를 먹고 내 안에 있어서 내 영이 힘을 얻어 내 속에 에너지를 빼는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나 과거의 잘못과 상처가 올라오는 것을 이김으로 살리는 말 [흐레마/레마]가 내 안에서 체험되어서 감사가 넘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