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20) 화요일 아침 말씀묵상 큐티를 합니다. [벧전 5:7~14]
‘염려’란 본래 ‘마음이 나누어진다’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분주해서 생각이 나누어지면 자연히 염려가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걱정과 근심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염려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세밀하게 돌보아 주시겠다고 나에게 약속하셨습니다(7절).
염려를 다 맡기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해결해 주시고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으로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빌4: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말로는 다 맡긴다고 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 끝나자 마자 바로 ‘아 어쩌면 좋을까?’ 하며 또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기도 중에 맡겨던 염려와 근심과 걱정의 보따리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과 동시에 다시 염려 걱정을 보따리에 싸서 일어나 나가면서 또 다시 염려하기 시작합니다.
진정으로 염려를 다 맡기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그 염려 보따리를 맡으신 주님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러면 나의 염려와 걱정은 없어지고 평강이 임하여 감사하게 됩니다.
마귀가 염려와 걱정 근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할 때도 그 마귀의 전략에 넘어지지 않고 온전히 염려를 다 주께 맡겨서 평강과 안식을 누리겠습니다.
오늘 주께 모든 염려를 정말 참으로 다 맡깁니다. 그래서 내 생각과 판단과 경험과 지각을 뛰어넘는 주님의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날이 되겠습니다.
마귀는 ‘참소자’, ‘고발자’라는 뜻입니다. 나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가 다 사함받았기에 하나님이 다시는 내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기에 의롭다함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네가 그러고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느냐?’ ‘네가 그러고도 목사냐?’ 하면서 참소하고 고발하며 정죄합니다.
그 때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이미 해방시켜 주셨다고 선포하며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겠습니다(롬8:1~2). 영적으로 잠들면 마귀의 밥이 됩니다.
믿음을 굳게 하고 나 혼자만 유별나게 고난받고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8~9절).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절하지 않은 칠천 명이 있었던 것처럼,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인내하고 있는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영광에 들어갈 때까지 굳건하게 서서 복음 전하는 일에 더욱 힘쓰겠습니다(10절).
나를 부르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영광에 이를 때까지 나를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믿음의 터를 견고하게 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10절).
10절을 자세히 보면 ‘잠깐’이라는 말과 ‘영원’이란 말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또한 ‘고난’은 ‘영광’이라는 말과 대조되어 ‘영원한 영광’ 그리고 ‘잠깐 고난’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아무리 힘들고 지겨워도 잠깐입니다. 잠깐의 고난이 지나가면 영원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고 잠시의 고난을 피하기 위해 영원한 영광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지 말아야겠습니다.
영원한 영광이 뚜렷한 보상으로 확신 된다면 잠시의 고난을 주님과 함께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내가 온전해지고, 굳게 서게 되고, 강해지고, 견고해져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고난에는 목적이 있고, 유익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은혜 안에 굳게 서 겠습니다. 그래서 나를 강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하시고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는 놀라우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폭풍우와 비바람 속에서도 내 앞에서 앞서 가시며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께 나의 삶을 의탁하며 걸어가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는, 모든 고난을 뛰어넘어 언제나 승리한다는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하며 보여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