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4/14) 목요일 아침 말씀묵상 큐티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출교를 당해서 쫓겨난 맹인이었던 자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으로 찾아가셔서 만나주십니다(35절).
예수님은 공동체 밖으로 쫓겨난 한 영혼을 찾아가 만나시고, 대화를 나누시며 믿음을 확인하시고 하늘 위로를 맛보게 하십니다. 나를 찾아오셔서 만나주신 주님은 오늘도 내 안에서 말씀으로 만나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심판자로 오셨습니다(39~41절). 이것은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과(3:17) 상반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상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원 계획은 구원과 심판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하러 오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처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시지만, 맹인이었던 자처럼 빛이신 주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인이었던 사람은 공동체에서 쫓겨나(22~23절) 어둠 가운데 처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참 진리 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뜬 맹인을 찾아오신 예수님은 그를 만나 대화하면서 그의 믿음을 확인하면서 신앙 고백을 하게 하고 마침내 그의 영안이 밝아지도록 해서 주님을 분명히 보고 알도록 하셨습니다(35~38절).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많은 것을 누리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자들이었지만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아 암흑과 멸망 속에 영원히 갇혀 지내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못보는 자들은 보게 하시고 보는 자들은 맹인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 되게 하기 위해 왔노라”고 하시자 이 말을 듣고 그럼 “우리도 맹인인가?” 하며 비아냥거립니다(40절). 그렇게 교만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구약성경을 가장 많이 아는 지식 계급층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하고 완악하여 자기들이 아는 지식대로 믿지 않고 살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취어도 그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놓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리석게도 돌을 들어 주님을 치려고 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별 수가 없습니다.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는 것만큼 믿지 않고 살지 못하면 그 사람은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고, 빛이 비취어도 여전히 죄 속에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다”(41절)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주님의 영광의 자리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가면 나갈수록 더 겸손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하면 그 완악함이 영의 눈을 가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4~16).
주님의 은혜로 맹인되었던 내가 본다는 것은 정말 복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이 아침 예수님께 절하며 경배를 드립니다(38절).
맹인되었던 자는 처음에는 예수님에 대해 ‘예수’라는 ‘사람’(11절), 다음에는 ‘선지자’(17절), 다음에는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33절)으로 알아가다가 이제는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고백하고 있습니다(38절).
그의 신앙이 점점 성숙해 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점점 더 주님을 깊이 알아가고 깨닫을 수 있도록 주님과 더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 말씀에 목말라하는 자가 되어 주님을 알아갈 뿐만 아니라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갈수록 겸손하게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자가 되어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