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17) 목요일 아침 말씀묵상 큐티를 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5절) 하시는 이 말씀이 오늘 아침 내 마음에 쟁쟁하게 메아리쳐 들립니다. 내 눈을 들어서 추수해야 되는 [밀]=[잃어버린 자녀들]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은 전도를 통해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들이 함께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36절).
내 앞에도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열매를 거두는 수고마저 귀찮아하거나 게으름을 피우거나 관심이 없거나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은 추수 때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았고, 즉 영생을 받았고 이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고 있는 데, 즉 추수하고 있는데, 이것은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36절).
제자들은 자신들이 뿌리지 않은 곡식을 거두라고 보냄받았지만 그 수확의 열매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모두에게 기쁨이 되게 해 주십니다.
사실 하나님이 심으시고 예수님이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하나님이 심으시고 예수님이 거두어 들이신 열매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도 자신의 노력으로 되어진 것이 아닌 것을 거두러 가는 것입니다. 흔히 전도할 때 내가 공을 많이 들여서 한 사람을 전도하였다고 말합니다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냈다”(38절)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노력은 다른 분, 즉 예수님이 노력해 놓은 것입니다. 이미 전쟁에서 승리해 놓은 전리품을 거두어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어 가는 것을 통하여 결국 주님의 노력한 것에 참여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나 양육은 자기의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노력에 참여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마리아 여인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노력, 예수님의 힘쓰심이 그녀를 살려 놓은 것입니다. 이제 영의 눈을 뜬 이 여인이 동네에 들어가서 ‘와보라’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도하며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가 많아졌습니다. 그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한 말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그 여자에게 “더 이상 우리는 당신의 말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오.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믿는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42절).
지금 이 사마리아 여자는 동네에 가서 메시아, 그리스도를 전했는데 이것은 결국은 예수님의 노력한 것에 참여 되어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내가 노력지 아니한 것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전도를 잘해서, 말을 잘 해서, 설교 잘해서 구원얻을 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전도는 오직 주님의 노력에 참여되어진 자로서 주님의 일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나 양육이 나의 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된 것이기에 뿌리는 자나 거두는 자 모두가 주님의 노력에 참여되어진 자로서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사실 나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노력에 서로 함께 참여한 것이기때문에 그 동역의 기쁨에 모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바울)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신 것입니다”(고전3:6~7) 우리말 성경.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 위해 주님이 노력해 놓으신 전도와 양육하는 일에 참여하는 자로 함께하는 동역자들과 한 마음으로 같은 뜻, 같은 말, 같은 생각, 같은 비전을 갖고 사역하겠습니다(고전1:10).
그래서 주님의 힘쓰시는 노력에 서로 참여하여 이 동역의 기쁨과 추수의 기쁨을 모두 함께 누릴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