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6/21) 화요일 아침 말씀묵상 큐티를 합니다.
사랑의 주님은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 도마에게 찾아오셔서 어떤 책망을 하지 않으시고 못자국난 손과 창자국난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며 의심을 풀어주십니다(24~27절).
그래서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주님께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28절). 이것은 믿음이 내 의지와 노력과 열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29절). 안 보고서 믿는 것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된 것입니다. 내가 만들어 내는 믿음이 아니라 성령님을 통해 나에게 주어지는 믿음입니다.
그래야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의지로만 믿는다면, 내 노력과 열심으로만 믿는다면,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들이 닥쳐오면 언제든지 내가 믿음을 버릴 수 있고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육신으로는 못 보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게 되는 것이 진짜 복입니다. 이 믿음은 성령님으로 인하여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보지도 못했는데도 그 분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있는 것이 바로 복음을 통하여 성령님 안에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의 특징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6~17)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육신을 따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부활하셔셔 승천하시고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아직도 도마처럼 예수님을 만져보려는 식으로, 나의 의지와 노력과 경력으로 주님을 믿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는 성령님 안에서 믿음을 선물로 받는 자답게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을 따라 알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새로운 피조물로 새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육신을 따라 내 힘과 정성과 열심으로만 주님을 붙들고 있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성령님이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그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내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내가 아무리 내 믿음으로 주님을 잘 붙든다고 하여도 잠잘 때는 붙들 수 없고, 내가 죽으면 더 이상 주님을 붙들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믿음을 놓아버리고 주님이 나를 붙들고 있는 믿음으로 성령님 안에서 살겠습니다.
육신을 따라 본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따라 보지 않은 것도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선물을 나에게 복으로 주심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믿어지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육신을 따라 온 내 믿음이 아니라 성령님을 따라 나에게 주어진 믿음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선물을 나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성령님의 인도로 요한복음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육신으로 못 본자들에게도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30~31절).
오늘도 내 안에 있는 주님의 영원한 생명을 풍성히 누리면서 평강 가운데서 쉼을 갖고 성령님을 따라 나에게 주신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성령님 도와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