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12) 월요일 아침 말씀묵상 큐티를 합니다. [벧전 3:13~17]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와서 두려워 할 수밖에는 상황과 환경에 직면할 때 두려워하게 되고 두려워한 나머지 이 두려움을 면하기 위해서 쉽게 타협하게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엄습하는 고난으로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이 찾아올 때 제일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거룩해야 하며 선한 양심을 가지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13~14, 16절).
고난을 받을 때 위기에 직면하면 사람을 두려워하여 타협하기 쉽고, 그러면서 양심을 거슬려 죄를 짓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 삶 속에서 거룩함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끝까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을 행하라고 합니다(14, 16절).
왜냐하면 내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으로 인한 두려움의 상황이 올 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심을 선포할 수 있다면 복음 증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저 사람에게는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이런 심한 고통 중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찬양하며 감사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궁금해 하면서 저 사람 속에는 무슨 소망이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지 묻게 됩니다.
그 때 내 안에 있는 소망, 복음의 영광을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대답할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때를 위해서 전도 기술을 배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된 죄사함의 구원의 체험과 의롭다 함을 얻은 영광의 비밀을 선포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 두 가지의 태도가 필요한데 ‘온유’와 ‘두려움’입니다. 온유는 절제된 삶의 태도입니다. 전도할 때 반대하거나 고난 받을 때 흥분하기가 쉽습니다. 그 때 온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전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윤리나 도덕적으로 옳고 세상에서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으면 고난과 핍박이 아니라 오히려 존경이 따라 올 것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16절, 히10:22). 사도 바울도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합니다(딤전 1:19, 고전8:7, 딛1:15, 딤전4:2).
그러므로 양심이 더러워지 않고 깨끗한 선한 양심을 가지려면 죄가 들어오면 바로 토해내며 회개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늘 무장해야 하고, 성령님이 내 마음을 지배하도록 내 삶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선한 양심에서 나오는 선행을 통해서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않게 하려는 것 때문입니다(16절).
그러나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도 의를 위한 고난과 핍박이 있습니다(마5:10~12). 내가 잘못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하여 즉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
‘의’를 위한 고난이 오는 이유는 이 세상이 ‘의’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의’란 단지 세상에서 착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말씀합니다(롬3:21).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하는 것을 믿는 사람을 세상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를 마귀가 가만히 두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어떤 어려움에도 당당함과 선한 양심으로 사는 내 모습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 묻는 자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항상 온유와 두려움으로 답변하고, 악한 반응이 나올지라도 끝까지 선한 태도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혹시 나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스스로가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기 위함이며, 그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16절).
오늘도 온유한 마음을 잃지 말고, 끝까지 선한 양심을 유지하면서 언제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